나는 어렸을 때부터 공무원이나 선생님을 하면 딱 어울릴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어렸을 때는 선생님이나 공무원, 과학자, 대통령 등의 그런 직업을 제일로 생각하는 그런 시대였다. 음... 그런 시대였다라고 이야기하는 걸 보니까 진짜 내가 나이가 든 게 느껴진다.
나는 내성적이지만 똑 부러진 성격이 있었는데 그래서였는지, 아니면 그 시대에서 가장 인정해주는 직업이었기에 어른들의 바람을 세뇌당한 건지는 모르지만 공무원과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선망이 컸다. 원래 전공은 다른 쪽이었지만 계속 공무원을 선망했었고, 운 좋은 타이밍에 나의 모든 것을 던져 올인한 결과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사실 올인했을 때,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까지 당한 세뇌의 영향인지 한 번 해봤더니 이룰 수 있었다. 지금은 가끔씩 시험에 합격하지 않았으면 내 인생은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말이다.
그렇게 들어간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내가 상상했던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워라벨이 있고 형식이 정해진 업무만 하고 단순 업무만 하는 그런 상상을 했었는데 자연재해나 특이사항이 있으면 24시간 대기해야 하고 특별한 주말이 없으며, 제도나 정책이 바뀌면 욕을 먹고 삿대질을 당해야 하는 최전선의 방패라고나 할까...
일만 힘들면 다행인데 그 안에서의 경쟁관계를 만들어놓아 동기나 직원들 사이에서도 감정이 상하는 일이 많고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라인을 타거나 일을 밀어내기 위해 정치와 샤바샤바를 하는 그런 행위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나의 경우는 그래도 민원인들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주다는 부분에서의 성취감을 찾아보려고 하였으나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민원인은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발생하면 욕을 하고 괴롭히고 힘들게 했다. 정책과 제도의 기준을 말단 공무원이 만들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소연과 욕받이는 내가 되어야 했다.
나는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을 가졌는데 공무원의 일은 완벽을 기하기 너무 어렵다. 제도와 정책이 계속 바껴 오늘은 맞았지만 내일은 틀릴 수 있다. 2~3년에 한 번 로테이션이 되기 때문에 일이 조금 익숙해졌다고 생각되면 다른 업무를 보게 된다. 이러다 보니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민원인도 이해가 된다. 공무원이 일을 잘 못 처리하면 민원인에게 직접적으로 피해가 가기 때문이다.
이번에 비가 많이 와서 물난리가 났을 때 피해를 입고 내 친구가 구청에 전화해서 이것저것 전화를 해봤다고 했다. 그런데 피상적인 이야기만 하고 한 번 확인해보겠다고만 해서 답답했다고 한다. 나는 친구의 입장도 이해되고 그 공무원의 입장도 이해됐다.
왜냐하면 그 공무원도 그 업무가 처음이었을거기 때문이다. ㅎ 물난리가 흔히 있는 일은 아니었을 거고, 이전에도 강남역 물난리가 났겠지만 그때의 그 담당자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의 담당자는 밀려오는 민원인의 질문과 항의 전화, 언론사의 질문, 내부에서의 대책 마련 등 때문에 녹초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조직에서 나를 보호해주는 것도 아니다.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보호를 더 못 받는 구조가 된다. 일을 많이 하게 되면 그만큼 실수를 할 확률이 늘게 된다.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실수를 할 확률이 줄고 각종 감사나 조사를 할 때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당연히 타깃이 된다. 민원인이 난동을 부려도 조직에서는 우리는 을이라 어쩔 수 없으니 사과하고 일을 키우지 말아 달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일상생활에 있어서, 직원과의 관계에 있어서, 민원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조직에 있어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시간들이 쌓여서 패배감과 무능함, 이해할 수 없음을 느꼈고 나는 의원면직을 선택하게 되었다. 공무원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직업이라고들하는데 봉사를 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입사 6개월부터 나와 맞지 않음을 느꼈지만 몇 년간 가족들이 좋아하는 이 직업을 놓기 어려웠다. 몇 년이 지나도 그 마음이 변하지 않고 더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있으면 24시간 일만하다가 암에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뭐있나. 내가 행복하면 그 인생은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 텐데. 내가 이렇게 살면 생을 마감하고 눈을 감을 때 난 왜 이렇게 견디면서 살았지라는 아쉬움과 후회만 남을 것 같았다.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공무원 의원면직을 선택하게 되었다.
댓글